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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컬 드로잉

  • 프린트 시리즈, 2014년
  • C프린트
  • 무제-1-17, 무제-1-2, 무제-1-11, 무제-1-26: 각 150 x 180센티미터
  • 무제-1-5, 무제-1-12, 무제-1-20: 각 270 x 180센티미터

    전시

  • 2014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14~15년

관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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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전경. 사진: 남기용. 제공: 에르메스재단

사진: 남기용. 제공: 에르메스재단

설치 전경. 사진: 남기용. 제공: 에르메스재단

사진: 남기용. 제공: 에르메스재단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법과 효과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똑 떨어지기보다는 좀 더 분위기를 중시하고, 합리화하거나 맥락을 찾아 넣기는 더 어려운 작업을 해 보고 싶었다.” 슬기와 민은 신작 테크니컬 드로잉 시리즈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물론 신작은 그들이 과거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건드렸던 주제를 이어간다. 2006년 작 기능적 타이포그래피 시리즈에서는 직접적 연관성을 찾을 수도 있다. “비가시적이고 이해 불가능한 무엇을 찬미하는 것…. 그러나 이번 작품은 그처럼 확신에 차거나 낙관적이지 않다. 세상의 신비에 관한 믿음이 엷어진 탓인지도 모른다.”

‘또렷하게 밝히며 일하고, 흐릿하게 숨기며 즐긴다’를 좌우명 삼아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슬기와 민에게, 첫째 임무는 주어진 내용·메시지·정보·의미를 되도록 투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만사를 명확히 밝히려는 충동, 마지막 음지까지 드러내고 가장 은밀한 속마음까지 소통하려는 충동에 병리적 차원이 있다고 의식한다. “끊임없는 접속과 스마트폰 덕분에 이제 무엇이든 즉시 알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저 신비로운 ‘앎’도 더는 즐거움이나 힘의 원천이 되지 못한다. 이제는 어떤 앎이라도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포스팅 하나 더 올리는 핑곗거리로 쓰일 뿐이다.”

이처럼 지루하게 투명한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에 그래픽 디자이너도 한몫한다는 점을, 작가는 문제 삼는다. 근대 이후 그래픽 디자인은 언제나 세상을 밝히는 힘이었다. 마치 프랑스 혁명 이후 파리 시내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처럼, 비이성이 숨을 만한 어두운 구석을 환히 밝혀주고 만인이 만인과 공평하고 명료하게 소통하게 해주는 그래픽 디자인은 그 자체로 선한 힘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한 개인의 가장 사적인 내면까지 낱낱이 밝혀낼 수 있는 오늘날, ‘더 밝은 빛’을 비추는 행위로서 그래픽 디자인에 관해 믿음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이는 그래픽 디자인뿐 아니라 사회적 의사소통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슬기와 민은 틈날 때마다 막연하게나마 어떤 그림자, 소통으로 분해되지 않는 찌꺼기를 남기려고 한다. 또는 주변에서 그나마 남은 세상의 신비를 시사하는 듯한 단서를 찾아 부각하기도 한다. 기능적 타이포그래피는 공산품 표면이나 포장 용기 등에 수수께끼처럼 찍힌 부호를 찾아내 확대하는 작업이었다. 한편, 2008년 이후 소묘, 음향, 인쇄물, 환경 그래픽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어온 현대적 구성 연습 시리즈는 사물이나 환경의 표면 뒤에 숨겨져 있다고 믿는, 아니 그렇게 숨겨져 있기를 바라는 형태를 찾아내고 구성해내는 작업이다. 작가는 그런 작업에 깔린 태도를 ‘암호적 상상’이라고 부른다. 본디 암호술에서 단서를 얻어 추리 소설이 제공하는 쾌감을 설명하려고 개발된 문학 이론 개념으로, 암호적 상상은 언어의 불투명성과 미끄러운 성질을 인정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의미 이면에 영원히 숨겨진 의미가 있다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나 진정한 의미의 내용은 물론 존재 여부도 아니고, 오히려 의심 자체다. 의심을 매개로, 우리는 세계에 다시 매혹된다.

이름이 암시하듯, 테크니컬 드로잉 시리즈는 이런저런 기술적 용도로 쓰이는 이미지의 세부를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아니 마치 막 지나치며 보는 것처럼” 흐릿하고 거대하게 확대한 프린트 작업이다. 작가는 시리즈에 쓰인 ‘원본’ 드로잉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으면서, 그들이 “훨씬 복잡하고 의미 있는 기성 도표의 극히 작은 일부”라고만 말한다. 기능적 타이포그래피에서 개별 작품 제목을 통해 부호의 출처를 밝힌 것과 대조된다. “기능적 타이포그래피는 우리가 발견한 암호적 상상의 계기를 명료하게 기록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테크니컬 드로잉은 그 어떤 기록도 아니다. 오히려 가공된 이미지에 가깝다. 그것은 세계에 객관적으로 무엇이 존재하느냐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별 기대를 내비치지 않는다. 덜 낙관적인 작업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다.”

이 작업을 구상하면서, 슬기와 민은 ‘인프라 플랫’​(infra-­flat)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마르셀 뒤샹의 ‘인프라 신’(infra-thin)이 너무나 미묘해 거의 지각조차 불가능한 차이를 가리킨다면, 인프라 플랫은 세상을 평평하게 압축하는 그 힘이 도를 넘어 오히려 역전된 깊이감을 창출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거창하게 비유하면 중력이 너무 커서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것이지만, 실제로는 현실 세계를 ‘2D의 3D 버전’으로 파악하는 시각이 극화한 가짜 깊이일 뿐이다. 오늘날 세계는 딱 셀카봉과 그 주인공 사이 정도로 납작해졌다. 인프라 플랫은 그 거리가 좁혀지다 못해 대상을 투과하며 마이너스 깊이를 창출하는 셀카봉의 시각과 관계있다.”

그렇다고 테크니컬 드로잉이 그런 추상적 셀카봉에서 포착한 세계를 그려보는 상상화는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각의 존재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 속성을 막연히 암시하는 이미지에 가깝다. 슬기와 민은 묻는다. “무차원 세계의 원근법 회화를 상상할 수 있나? 우리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근사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제는 그들이 대체 무슨 소리를 알고서 하는지 의심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작업에 관해 즉답을 피하는 태도에는, 아예 기만적이지는 않더라도 얼마간 가식적인 느낌이 있다. 또한 테크니컬 드로잉에 마치 ‘인프라 플랫 월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소품처럼 슬며시 허구적인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처럼 구체적인 서사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 작업에 일정한 허구성, 또는 연극성이 언제나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어쩌면 ‘흐릿하게 숨기며 즐기기’와도 상관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성질은 우리 작업 자체는 물론, 작업을 제시하는 방식과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언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지원, 테크니컬 드로잉, 2014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 도록,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