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적 타이포그래피는 오렌지 주스 병이나 빅 라이터 등 제품이나 포장 표면의 특정 세부 타이포그래피를 추출해 보여 주는 포스터 시리즈다. 부호화된 형태로 미세하게 찍힌 글자와 숫자는 아마도 제작자나 유통 업자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겠지만, 소비자에게는 실제 의미를 알아낼 방법이 없는 암호와도 같다. 이런 부호의 흥미로운 점은 단지 그들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아니다. 그보다 매력적인 점은 그들이 무척 유의미해 보이는데도 그 의미를 알아낼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다. 확신에 차고 명확한 부호는 자신이 무작위적 형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 준다. 그러나 그 해독 불가능성은 문학 이론가 숀 로젠하임이 말하는 ‘암호적 상상’을 자극한다. 언어의 불투명성과 모호성을 인정하고, 가시적 표면 뒤에 숨겨진 의미를 끊임없이 추궁하는 태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