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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표지는 가운데 맞춘 세리프 활자체 (노은유가 디자인한 옵티크) 타이포그래피와 점으로 형상화해 인쇄 요소 배열을 무시하는 듯한 위치에 박으로 처리된 대문자 R 형상 두 개 사이에서 미묘한 대비를 보여 준다. 덧표지를 벗기면 머리글자의 뜻이 드러난다. R자 하나를 이루는 점 스물여섯 개는 A에서 Z까지 알파벳 문자를 가리킨다. 두 머리글자에서 알파벳 문자는 반대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저자의 창작 방법을 순진하게 암시하는 장치다. “예컨대 ‘billard (당구대)’와 ‘pillard (약탈자)’가 그것이다. 나는 이것들에다가 비슷한, 그러나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단어들을 덧붙였고, 그렇게 해서 거의 같은 두 문장을 얻었다.” (레몽 루셀, ‘나는 내 책 몇 권을 어떻게 썼는가’, 1935년, 아프리카의 인상, 357쪽)

비슷한 대비가 속장에서도 이어진다. 역사적인 전위 문학 작품을 위한 타이포그래피 치고는 보수적이고 얼마간 예스럽기까지 하다. 텍스트의 급진적 속성은 제대로 갖춰 입은 정장을 통해 더 뚜렷이 드러날 것이고, 어쩌면 이런 불일치 덕분에, 좀 더 흥미롭게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계산이었다. 활자체 (구식 명조체와 모노타이프 푸르니에), 간격 (조금 넓은 듯한 글자 사이), 배열 (양 끝 맞추기와 대칭 배열) 등은 모두 과격한 실험적 텍스트에 차분하고 안정된 인상을 부여한다.

앞표지

표제지 펼친 면 속장 펼친 면

책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