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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photo by Myoung-Rae Park

사진: 박명래. 제공: 사무소, 서울

제발은 구 기무사 건물의 기둥 하나를 소리 나는 기둥으로 변형시킨다. 관객은 기둥에 다가서고, 기둥을 만지고 껴안고 들음으로써 건물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제발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을 이중으로 복잡하게 한다. 먼저, 전시라는 공적 공간을 찾은 관객이 장소를 물리적으로 껴안음으로써 얼마간 내밀한 사적 경험을 하게 된다. 기둥에서 나는 소리는 너무 작기 때문에, 몸을 밀착시키고 귀를 가까이 대야만 비로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타인과 동일하게 나눌 수 없다. 다음으로, 기둥이 내는 소리 자체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흐린다. 기둥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인터넷 고민 상담 포럼에 올린 여러 질문들을 읽어 주기 때문이다.

고뇌로 가득하고, 절박하고, 때로는 비이성적으로까지 보이는 그 질문들은—“이 남자와 계속 사귀어야 할까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방언으로 기도할 방법은 없을까요?”—늘 도움과 자문을 구하지만, 대부분 답을 얻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매일 수천 명이 인터넷에 질문을 올린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거나 기도를 하듯.

여러 문화권에서, 기묘한 소리를 내는 거대 구조물은 미신과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마치 신의 소리를 전하는 듯, 신성한 매개체로 간주된다. 제발은 그와 유사한 영적 경험을 재현하지만, 목소리를 듣는 이의 위치는 정반대다. 그들은 신의 목소리를 듣는 위치가 아니라, 오히려 신의 위치에서 도움을 구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이 힘 있고 지혜로운 위치가 그 장소에 그리 낯설지는 않을 테다. 과거에 같은 건물을 점유했던 국군 기무사는, 공적 목소리건 사적 목소리건 간에, 모든 목소리를 부단히 듣는 기관이 아니었던가.

(플랫폼 인 기무사 전시 도록)

사진: 박명래. 제공: 사무소,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