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니 여자라,는 한중록이라는 역사적 텍스트를 출발점 삼아 “‘여성’에 대한 동시대적 정서를 고찰하고자” 기획된 전시회였다. 혜경궁 홍씨가 필사한 한중록은 1795년부터 1805년 사이에 쓰였다고 알려졌다. 한국어 고전 문학의 대표로 꼽히는 이 작품은 현대판도 여럿 출간되었고, 현재도 시중에는 만화와 학습서를 포함해 스물네 종가량이 유통 중이다. 원작은 같지만, 책마다 출간 의도에 따라 구성과 문체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1961~2020은 1961년 민중서관 판(한듕록)에서부터 2020년 미르북컴퍼니 판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주요 한중록 열세 판을 동시에 읽는 작업이다. 우리는 한중록 원문에서 눈에 띄는 문장 여섯 개를 뽑은 다음, 해당 문장을 열세 책에서 찾아 내 여섯 ‘페이지’로 이어 붙였다. 즉, 각 페이지는 한중록의 한 문장을 조금씩 다른 변주로 열세 번 되뇌이게 된다. 작업에 쓰인 판본은 다음과 같다.
민중서관, 1961년
서문당, 1975년
범우사, 1988년
명문당, 1994년
일신서적출판사, 2001년
이회문화사, 2002년
신원문화사, 2002년
서해문집, 2003년
청목사, 2003년
소담출판사, 2004년
현암사, 2009년
미르북컴퍼니, 2020년
스타북스, 2020년
한중록은 본디 개인의 일기로 쓰였지만, 미리 계획하고 집필한 책이 아니니만큼 쓰인 시기와 상황에 따라 꽤 이질적인 어조를 보인다. 현대에 들어 여러 편집자와 출판사가 가한 가공은 혜경궁 홍씨의 기록에 한층 풍부한 의미를 더해 주었다. 1961~2020은 이처럼 사적인 기록이 여러 목소리를 통해 해석되고 반복되고 전파되며 공적인 기억이 되는 모습을 함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