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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트

미국 그래픽 디자인 전문지 프린트 특집호 초빙 디자이너로 위촉받아 작업했다. 다음은 특집 기사 섹션에 우리가 써낸 서문이다.

뭔가를 다 썼다고 생각할 때, 마침내 내버렸다고 생각할 때, 쓰레기의 끝없는 사후 삶이 시작된다. 재가공, 재활용, 재보강, 재발견, 재수용, 재전환된 모습으로, 쓰레기가 돌아온다. 우리 생활에 다시 들어와 새로이 쓰이다가 다시 버려진다. 결국에는 또다시 돌아오겠지만.

이번 호는 ‘쓰레기’ 특집호다. 환경 문제에 국한된 주제가 아니다. 여기에 실린 기사들은 쓰레기를 ‘착하고’ 지속 가능한 활동의 나쁜 부산물로 취급하기보다, 끝없이 되돌아오는 쓰레기의 여러 측면을 살펴본다. 순환 과정에서 쓰레기는 영감을 주고, 말을 걸고, 홀린다. 우리는 쓰레기통에서 뜻하지 않은 보물을 건지기도 하고, 그 ‘보물’에 아무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버리기도 한다. 그러고는 버린 물건을 그리워하고, 애석해하고, 다시 구출해 보려 애쓴다. 아끼던 물건이 다른 사람 손에서 쓰레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남은 것이 쓰레기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쓰레기 가운데에서, 그런 쓰레기를 활용해 일하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특집을 디자인하면서, 우리는 원래 기사에 두 가지 요소를 더했다. 페이지 여백에 보일락 말락 적어 넣은 ‘‌낙서’가 그중 하나다. 우리 표현으로 ‘쓰레기의 평행 우주’에 해당하는 낙서다. 일회적인 대중문화 클리셰에서부터 미래를 (정확히는 6천1백1년 앞을) 내다본 보존 사업까지, 낙서는 디자인뿐 아니라 더 폭넓은 문화에서, 나아가 편집증과 과대망상증을 보이는 역사주의 사업에서 반복, 재활용, 재생 같은 주제를 확인하고 확장한다.

두 번째 요소는 아마 (우주 은유를 조금 더 연장해 보자면) ‘쓰레기의 내부 우주’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특집 기사를 위해 ‘갤럭시 에코즈믹’이라는 활자체를 만들었다. 체스터 젱킨스가 디자인해 프린트 기본 활자체로도 쓰이는 갤럭시 폴라리스를 ‘에코’ 버전으로 개량한 작품이다. (2009년 네덜란드 회사 스프랑이 개발한) ‘에코폰트’에서 힌트를 얻어, 글자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잉크를 절약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만 우리 활자체에서 그 구멍은 칼 세이건이 1980년에 써낸 과학 고전 코스모스에서 발췌한 문장 형식을 취한다는 점이 다르다. 글자 속 글자에는 중립적인 갤럭시 폴라리스의 정반대이자 여러 디자이너가 궁극의 ‘쓰레기’ 폰트로 꼽는 코믹 산스가 쓰였다. 활자체 이름 ‘에코즈믹’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에코폰트의 고귀한 의도와 낙관적이다 못해 얼마간은 키치처럼 들리기까지 하는 세이건의 말을 다소 반어적으로 기리는 글자체다. 아무튼, 이 작은 구멍들로 이 작은 행성을 구할 수 있다면, 거기에 무한히 거대한 생각을 담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크레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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